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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혀 가시는 최 프란치스코 성인을 생각하며...
 surisan  | 2018·07·26 16:02 | HIT : 198 | VOTE : 53
                                                                     잡혀 가시는 최 프란치스코 성인을 생각하며...

                                                                                                                                                   전담신부 이헌수(요셉)

1839년 7월 31일은 수리산 교우촌에 포졸들이 들이닥친 날입니다. 7월을 맞이하여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의 신앙을 다시 한 번 묵상하게 됩니다. 특히 그가 보여주었던 신앙과 인품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성인은 홍주 고을 다래골(다락골이라고도 함)에서 최인주와 경주 이씨 사이의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은 매우 부유하였고 복음이 조선에 전하여졌을 때 제일 먼저 입교한 집안의 하나였습니다. 성인의 아버지(최인주)는 첫 번째 박해(1791년의 신해박해) 때 많은 고초를 받은 후 석방되었습니다. 그는 순박함과 신심이 뛰어났습니다. 가난한 친척들과 이웃들에게 미리 알아서 구제의 손길을 펼치는 자세도 유별났습니다. 자기 집 종들에게 자기들을 영감님이나 마나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아버지와 어머니라 부르도록 명하였습니다. 그(최인주)는 죽으면서 자녀들에게 세 가지 유언을 남겼습니다.

1. 서로 무엇을 줄 때 거저 주어라.
2. 보증을 서거나 혼인 중매를 절대로 서지 말아라.
3. 이웃들과는 항상 화목하게 지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최경환 성인의 신앙 생활을 보면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아버지의 겸손과 이웃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 엿보입니다. 성인은 항상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중하게 여기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최 바시리오 이력서 참조) 이는 아버지인 최인주가 언제나 자녀들에게 강조한 부분이었습니다. 이를 잘 실천하면서 살았던 분이 최경환 성인이셨습니다.
또한 성인은 부친의 유언에 따라 애긍을 실천하고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려고 노력하였는데, 이러한 사실은 다음과 같은 증언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최 프란치스코가 시골(수리산)에서 저와 이웃해 살 때 많이 보았습니다. 그는 인정이 많았는데, 한 번은 길을 가다가 한 늙은 할머니가 많은 떡이 쉬어서 팔지 못해 애를 쓰는 것을 보고는 먹을 수 없는 데도 사가지고 왔습니다. 또 한 번은 두 사람이 빚 때문에 싸우는 것을 보고는 프란치스코가 자기 돈으로 대신 빚을 갚아 주어 화목하게 지내도록 했습니다.’(기해, 병오 순교자 시복 수속록. 회차 27, 김 막달레나의 증언 참조)

어쩌면 성인의 삶에 많은 영향을 준 분은 바로 아버지 최인주라 생각됩니다. 아버지의 가르침이 신앙과 접목이 되어 참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는데 큰 힘과 버팀목이 된 것은 아닐까요.
따라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우리 자녀들에게 올바른 신앙 생활과 참다운 인격적인 삶을 전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은 부모를 보고 배우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성인이 잡혀가시게 되는 7월. 성인이 보여주신 신앙의 삶을 묵상하고, 또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신 아버지 최인주의 삶을 묵상하면서, 우리도 자녀에게 신앙의 유산을 잘 물려주는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하는 한 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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